R.A.T.M 알아요?


. Wake Up! : 소개

  이왕 마무리하기로 한 시리즈인데도, 미련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원래 그렇지 않은가. 화장실에서도, 볼 일을 다 보고 일어날 때 쯤에 또 다시 아랫배에 진한 충격이 오는 법이니까. 향후에 쓰려고 했던 것과, 지금까지의 글들에 적지 못한 것은 정말 많은데... 그러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어쨌거나 마지막인데, 관두더라도 이 뮤지션들에 대해서는 소개해야 하지 않을까ㅡ 싶은 팀들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마음 속에서 두세 팀이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결국 선정된 것은 Rage Against The Machine(이하 RATM). 이전 글에 잠시 언급했지만, 랩이라는 도구 자체에 관심을 갖게 해 준 계기가 된 팀이다. 내게 있어서 ATCQ는 사랑의 대상이고 The Roots가 존경의 대상이라면, RATM은 열정의 대상이었다. 물론 써 놓고 보니 많이 유치하긴 하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는 것 같다. 글을 쓰는 지금도 RATM의 음반들을 주욱 걸어 놓고 듣고 있는데,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절박한 기분이 되는 것을 왜일까.


  새삼스럽지만, RATM의 음악은 참 멋있었다. 사운드가 멋있었다던가, 연주가 멋있었다던가 하는 이야기와는 좀 다른 경우다. 그냥 랩에 관심이 있던 평범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RATM의 음악들은 슈퍼맨 같은 존재였다. 처음에는 그저 와, 멋있다ㅡ 혹은 와, 시끄럽다ㅡ 정도로 다가왔지만, 가사까지 하나 하나 곱씹으면서 들었을 때의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도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이유도 그들 때문이었다. 나에 관한 것 외에는 이 세상에 거의 아무 불만 없이 자라 온 꼬맹이에게는 그들의 음악이 참 과격하게 들렸지만, 책과 뉴스를 조금만 들여다 보니 거기에는 그들이 그렇게도 부르짖고 행동하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 주변에도 말이다. 그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RATM을 들을 때 마다 묘한 슬픔과 분노가 떠오른다.


2. Year Of The Boomerang : 만남

  RATM의 음악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97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아시스와 너바나를 좋아하게 되어 해외 롹 음반 쪽에도 호기심이 생기던 어느 날, 뻔질나게 드나들던 동네 음반 가게 주인 아저씨가 내게 테잎 두 개를 건넸다. 테잎을 받아 들고 팀 이름을 읽어 보았다. Rage-분노? Against-대항하여? The Machine-기계? 이건 뭣 뜻이람? 아무튼 좋다기에 들고 집에 왔다. 물론 거저 준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하여 나는 RATM의 첫 앨범 [Rage Against The Machine]과 두 번째 앨범 [Evil Empire]를 손에 넣게 되었다. 집에 와서 오디오 데크에 넣고 처음 들었을 때, 우선 사운드에 놀랐다. 그 때는 영어 실력이 바닥을 기던 때라... 뭐라고 씨부리는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굉장히 신나는데? 라는 생각 만으로 워크맨에 쑤셔 넣고 한 몇 달 간을, 그렇게 흔들거리며 학교를 다녔다. 


  기타를 막 배우기 시작한 때였던지라, 우선은 화려한 악기 연주와 쏘아 붙이는 랩이 귀에 들어 왔다. 앨범을 들어 보신 분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곡들에 나오는 소리는 희한한데, 부클릿에는 당당하게 “신디사이저나 컴퓨터 이펙터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적어 놓았으니, 어린 마음에 참 많이 놀랐다. 기타에서 이런 소리가 나? 라는 생각도 들어서, 막 시작한 인터넷을 마구 뒤지며, ‘이런 소리는 어떻게 나는 건가요’ 라는 질문을 미친 듯이 하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단순히 팝송 가사 해석이나 하며 공부나 할까ㅡ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가사 해석이 내게 큰 충격이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뭐야, 단순히 TV에서 보는 기쁘고-슬프고-화나는 일들이 아닌...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 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잖아ㅡ 라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나서, 주말에는 가끔 하루 종일 동네 도서관에 처박혀 맑스나 베버의 책, 말콤 X의 자서전 같은 책들을 읽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 웃기지만... 그 때 RATM을 듣지 않았더라도 나는, 이런 책들을 즐겨 읽게 되었을까? 내가 생각하는 답은 ‘NO’ 다.


3. Guerilla Radio : 정치?

  RATM을 이야기할 때, 당연히 정치적 색깔을 배제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밴드의 두 주축인 멕시칸-아메리칸 잭 데 라 로차와 흑인 탐 모렐로에게는, 미국 내에서의 인종 차별이나 현 정세에 관한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였을 거라고 생각된다. 


  사실 나는, 뮤지션들이 자신의 앨범에 개인적인 정치적 색깔을 담는 것에 관해서는 별 생각이 없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 내뱉은 말을 지키지 못하고 표류하는 모습들에는 끝없는 야유를 보낸다. RATM을 좋아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음반 뿐만 아니라 각종 시위 현장이나 거리 라이브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전달할 줄 아는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몇 가지 들어 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의 수록곡 “Freedom” 은, FBI 요원 두명을 살해한 혐의로 20년째 복역 중인 인디언 인권 운동가 Leonard Peltier를 모티프로 삼은 것이다. 정치적인 모함이며 인종 차별적인 편견이 개입됐다고 확실시 되는 Leonard Peltier의 석방을 위해 이들은 기금마련 자선공연을 펼치는 행동을 보였다. 데뷔 앨범 발표 이후 RATM은 매진사례를 이룬 영국 투어에 이어 Pearl Jam, Body Count, Tool, Suicidal Tendencies과 같은 사회참여적인 밴드들과 함께 공연을 했다. 93년 Lollapalooza 투어 중 필라델피아 공연에서는 음악 검열제도에 대한 항의로 가슴에 P-M-R-C(Parents Music Resource Center: 앨범 등급 검열 위원회)란 글자를 쓴 멤버들이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벌거벗은 채 서서 20여분간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 프랑스 세관에서는 니카라과 반군이 제작한 티셔츠를 반입하다 압수당하기도 하고 공공연하게 혁명가 Che Guevara에 대한 존경의 염을 밝히는 등 RATM의 극좌노선은 굽힘없이 계속됐다.

  두 번째 앨범 [Evil Empire]를 발표한 이후에도 RATM은 Leonard Peltier의 석방 운동과 티벳 독립을 지지하는 자선공연, 낙태에 대한 여성의 선택을 지지하는 Rock For Choice 등 각종 시위와 사회운동 현장에 종종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세 번째 앨범 [The Battle Of Los Angeles] 발표 당시의 최고 관심사는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Black Panther의 일원이자 저널리스트 Mumia Abu-Jamal의 구명운동이었다. Mumia Abu-Jamal은 81년에 필라델피아 경관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중인 인물이다. Leonard Peltier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은 Mumia의 재판에 인종차별이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 앨범의 첫 싱글로 커트된 “Guerrilla Radio” 나 “Voice Of The Voiceless” 는 바로 Mumia Abu-Jamal의 사건을 다룬 곡이다. RATM은 Mumia Abu-Jamal을 위해 기금을 마련하고 UN 인권위원회에서 탄원 연설을 하는 등 사형 집행을 막는데 열성적으로 나서며 그들의 의지를 보였다.


  이렇게 그들은 선명한 정치색을 부각시키며 사회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환기시켜왔다. 농담 같은 이야기지만, 탐 모렐로가 직접 만든 커스텀 오더 기타에는 래커로 커다랗게 ‘ARM THE HOMELESS’ 라고 쓰여 있었다. 피식ㅡ 하면서도 뜨끔한 이야기가 아닌가?


 


4. I’m Housin’ : 해체, 적응기, 그리고 재개

  그리고 2000년이 왔다. RATM의 마지막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는 정말,  절친한 친구를 잃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남긴-라이브 앨범이 하나 더 있긴 하지만 일단 그것은 논외로 하자-커버 앨범 [Renegades] 역시나 정말 좋았기 때문에 그 아쉬움은 더 컸다. 커버 앨범의 트랙 리스트를 주욱 훑어 보도록 하자.




RATM – [Renegades] (2000)

1. Microphone Fiend - Eric B. & Rakim
2. Pistolgrip Pump - Volume 10
3. Kick Out the Jams - MC 5
4. Renegades of Funk - Africa Bambaataa
5. Beautiful World - Devo
6. I'm Housin' - EPMD
7. In My Eyes - Minor Threat
8. How I Could Just Kill a Man - Cypress Hill
9. The Ghost of Tom Joad - Bruce Springsteen
10. Down on the Street - The Stooges
11. Street Fighting Man - Rolling Stones
12. Maggie's Farm - Bob Dylan


  정말로 주옥 같은 트랙 리스팅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커버 앨범’ 이란 무엇인가ㅡ 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몇 가지 앨범들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랩과 롹의 히트곡들을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편곡하여 연주한 음반이지만, 곡들은 하나같이 정치적 메시지 또한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과 원곡들을 하나씩 찾아 들어 보시기를 권한다.
  
  아무튼 이들은, 이 마지막 앨범과 라이브를 내고서 팀을 해산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해체의 이유를 추측한 소문은 무성했지만, 그들은 별 말이 없었다. 그저 잭과 나머지 멤버들의 혼선으로 인한 것일 거라는 소문만 무성했다. 실제로, 잭은 팀 해체 이후에 개인 작업과 싱글을 만들어 냈고, 탐과 나머지 두 멤버 브래드와 티미는 세 명이서 객원 보컬들을 써 가며 실험들을 하고 있었다. RATM이 아무래도 급진적인 밴드이다 보니, 흑인 래퍼가 기용될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Cypress Hill의 B-Real이나, 당시 두각을 드러낸 Eminem, 심지어 Snoop Dogg 같은 MC들이 잭의 빈 자리를 채울 거라는 루머가 무성했으니까.
  그러다가 2002년도에 결국 세 명이 선택한 보컬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사운드 가든(Sound Garden)의 크리스 커넬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밴드 이름은 오디오슬레이브(Audioslave)가 되었고. 다들 경악해 마지 않았다. 과거, 얼터너티브라는 말이 유행할 당시의 음악을 선도해 나가는 그룹들 중 하나인 사운드 가든의 핵이었던 크리스 커넬이 과연 RATM과 잘 융화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 외로 크리스 커넬과의 융합은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그들은 듣는 사람들에게 RATM과 오디오슬레이브를 따로 떼어서 생각하게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이제 오디오슬레이브의 이름을 걸고서도 세 장의 음반이 나왔고, 화려한 플레이는 여전하지만 독자적인 노선 구축에는 성공했다. 



  반면에 잭은 이렇다 할 소식이 없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직후, DJ Shadow와 함께 [March Of Death] 싱글을 발표한 이후로는 말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혁명은 방송되지 않는 거니까(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


5. Sleep Now In The Fire

  아마도 근래의 뮤지션들 중에 RATM은 가장 급진적이었던 밴드일 것이다. 음악을 도구로 삼아 자신들의 사상을 피력하는 그들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보냈었지만, 반대 급부적으로 RATM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수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들이 공공연히 ‘적’ 이라고 말한 자본주의자들과 공권력을 남발하는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의 앨범에 Parental Advisory 딱지를 붙이고 싶어 안달하는 문화 검열 조직, 기독교인들 등은 RATM의 음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7백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남부럽지 않은 부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한 이들이 소외계층의 권익을 대변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메이저 레이블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게다가 크리스 커넬과의 오디오슬레이브 결성 이후에는 밴드의 음악에서 정치적인 색깔은 거의 빠져 버렸기 때문에 이런 비판은 더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런 시각을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듯 하다. 꼭 사람들의 눈에 맞춰야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오디오슬레이브의 음악 또한 RATM이 했던 음악만큼이나 멋지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그들을 지지하고 있으며, 비록 서로 다른 길을 가고는 있지만 그들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by 티어기타 | 2009/09/10 13:45 | 락음악 감상문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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